용화사
한려해상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통영 용화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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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찰소개
  용화사 연혁 및 유래
용화사의 유래

통영 용화사 사적(1915)
大正4年三月日 重輯(대정4년 3월 을묘년(1915) 거듭 편집하다.)

주지 : 김성오(金性나)
법무 : 류묘진(柳妙眞)
서기 : 조기종(曺鮮鐘)

조선 경상남도 통영군 산양면 미륵산 용화사 사적
서(序)찬연한 꽃, 지저귀는 새소리, 이 모두 여 래의 면목이요, 시원한 바람, 휘영청한 달빛 본분의 소식 아님이 없어라. 내가 마침 유람 타가 다행히 미륵산에 이르러 잠시 머물렀 더니 산의 덕사(德士) 주지 김우운(友雲)스님이 손수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나에게 물어 말하길 이는 용화사의 사적이니, 사적이 있으되 서문이 없으면 격에 맞지 않을 듯하니 바라건대 일언을 더하여 서문을 짓길 청하거늘 내가 손을 모으고 늠연히 말하길 아름다운지라 덕이여 그 또한 좋지 아니한다. 대 저 산이 미륵으로 이름하고 절은 용화로 현액하니 어찌 합당한 이름이 아니 리오. 용화는 미륵 세존의 당래회상이니 산의 이름 절의 이름이 어찌 우연이 겠으리오. 대저 이름이란 실상의 손님이요, 실상은 이름에 응하는 것이니 이 제 이름과 실상이 상부하니 이 또한 여래의 면목이요, 본문의 소식이라. 손을 모으고 가상히 여김을 그만두지 못함이로다. 가람의 개창과 중건중수, 개채 단확, 화주 도감 별좌와 내지 시사하신 선남선녀는 모두 이름과 모양을 벗어 버리고 다만 성심이었을 뿐이니 그 보응을 어찌 필설로 가히 논하리오. 원컨 대 가람의 모든 스님네께서는 무로써 유를 삼고 유로써 무를 삼으면 이 절의 장원함이 어찌 항사천겁의 무궁함에 이르지 않겠는가. 스님네께서 힘써 주시 길 바랄뿐이로다.
세재 을묘년 봄 유양거사 서상린 근서

명나라 신종황제 만력 40년 병진년(1616년) 풍악산인 자윤, 성화 두 스님 이 평소 통상국 윤천뢰와 인연이 깊어 주장자를 짚고 통영에 와서 머물다가 산천의 수승한 곳을 유람할 새 통영 남쪽에 산이 있으니 몇 송이 연꽃이 아득한 바다위에 옥으로 깍은 듯 하며 멀리 구름 밖 하늘로 솟았으니 응연히 삼신산의 한 부분이 떨어진듯 하였음이라. 두 스님께서 통상국 윤공에게 이르길 이같이 산명수려한 곳은 수행자가 가 희 자취를 의탁할만한 곳이라 하여 윤공의 넉넉한 시재를 입고 또 단월의 도 움을 받아 정사년(1617년)에 미륵산 제3봉 아래 왼쪽 기슭에 정수사(淨水寺) 를 새로이 창건하였으니(원래 미륵산 바위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예부터 도솔 암이 있었으니 고려 태조 26년(943) 계묘년에 도솔선사가 창건하였음), 이 때 서운 자사 민보 유해 지종 등이 함께 하였음이라. 자윤 성화 두 스님이 대중 을 모아 근간을 튼튼히 하고 먼저 법당을 짓고 다음으로 정루를 세우고 선당과 승당을 차례로 세우니 가히 해악(海岳)의 선구(仙區)라 이를 만 하였다. 천계 2년 임술년(1622) 풍우의 변에 건물이 모두 재해를 입어 일시에 쓸어 다 하니 가히 도고마성(道高麗盛)이라 할지라. 정수도량이 사태에 묻힌 연고로 해를 넘겨 계해년(1623)에 다시 제3봉 뒷고개 현금산에 절을 지어 천택사(天 澤寺)라 이름하고 법당, 정루 및 선실, 승당, 향등전을 외연히 완성하니 절은 부유롭고 대중은 운집하였음이라. 그 해 절 기슭에서 장군수(샘)을 얻었으니 물을 관장하는 승려가 말하길 장군수는 재앙의 실마리가 된다 하니 이 소문 이 조정에 까지 들려 병인년(1626)에 조정에서 나라의 풍속을 다스리는 차원 에서 천택도량의 맥과 장군수의 수원을 끊어 버렸으니 이 이후로 절의 기운이 점점 쇠퇴하여 스님 네가 사방으로 흩어짐에 가히 다시 불러 제접하기 어려운지라 숭정원년(1628) 이른 봄 또 어리석은 백성에 의하여 뜻하지 않은 불을 만나니 오호라 이는 또한 인마(人魔)라 이를지라. 이때에 건물은 모두 타서 다했으나 답토는 남았으니 화사(化士) 성화 선납이 뜻을 견고히 하여 또 다시 절을 지을 마음을 두어 항시 심념을 느슨히 하지 아니 하였음이라. 위대하고 기특한지라 성화 상인이여 상인이 맹렬히 반성해 말하되 가람의 복택은 인력으로 용이하게 되는 것이 아님이라 하여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 해 제1봉 바위 아래에 단을 설치하고 7일 7야로 분향헌성하며 지심으로 발원 할 때 꿈에 신인(神人)이 나타나 부촉해 말하되 '너는 현재의 화사(化士)요 나 는 당래의 교주라. 내원계중(內院界中)에 본디 용화의 회상이 있음이라 하고 손을 끌고 도량자리를 지점해 주니 이는 정성의 지극함이 금석을 이루어 친 히 미륵불의 수기를 받은 것이라. 이 성화 상인이 꿈에서 깨어나 삼생의 연을 활연히 깨우치사 승정원년 무진년 (1628) 2월 개창의 역사(役事)를 시설하고 화주 행선으로 더불어 통상 장태 좌와 우후공 우공제에게 시주케 하고 단월에게 화주하니 물자는 하늘에서 내 려온 듯하고 역사는 신의 도움이 있는 듯하였음이라.. 절의 이름을 용화라 하니 곧 미륵불의 당래용화에 응하는 것이라. 절 이름이 그 이치에 맞고 절터는 그 마땅함을 얻었으니 진실로 만세무궁의 자리로다. 정수사와 천택사의 초창 및 용화사의 발종자는 성화선사이시고 또 성화선사를 쫓아 용화를 창선하신 분은 행선 선사이시다. 만약 불후신(佛後身)의 원 력이 아니면 어찌 시종 공을 이룸이 이와 같겠는가.
“진실로 천고에 빛날 아름다움인저”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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